편집자의 말: 이 글에 대해 앞서 몇 마디 붙이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이 글은 마이클 잭슨을 둘러싼 대중의 극단적 감정과 유명인 우상화가 당사자에게 미치는 파괴적 영향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그러나 팬덤, 명성, 고립, 논란, 죽음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하나의 기독교적 우상숭배 서사로 지나치게 통합하는 한계를 지닌다. 그 과정에서 해석은 사실처럼 제시되고, 팬들의 애착은 병리화되며, 마이클 잭슨 자신도 다시 하나의 도덕적 상징으로 환원되는 문제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한 인간의 삶을 너무 도식화하여 해석함으로 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너무 쉽게 무시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신으로 만들지 말자는 주장은 지극히 타당하고, 이 시대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기에 이 글을 함께 나누려 한다.
세실리 콕스
Cecily Cox
영화 《마이클》의 개봉은 현대 문화에서 가장 격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논쟁 중 하나를 다시 열어젖혔다. 이 영화가 거둔 엄청난 흥행 성공은 마이클 잭슨이 여전히 대중의 상상력 속에서 독보적으로 강력하고, 거의 자석과도 같은 힘을 지닌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 훨씬 넘었지만, 관객들은 여전히 그의 삶을 낱낱이 들여다보기 위해 극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한편 소셜미디어는 그의 삶과 유산, 그리고 그를 뒤따랐던 논란을 둘러싼 논쟁의 전쟁터가 되었다. 지지자들과 비판자들은 마이클 잭슨이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놓고 여전히 격렬하게 맞선다. 그러나 《마이클》을 둘러싼 이 광풍은 훨씬 더 섬뜩한 질문을 던진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아직도 그를 필사적으로 믿고 싶어 하는가?
대부분의 유명인은 잊힌다. 대중의 관심은 곧 다음의 반짝이는 대상으로 옮겨간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은 예외로 남아 있다. 세계 어디를 여행하든 그의 기억을 기리는 성소들은 여전히 살아 있다. 식당 벽에서는 그의 얼굴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거리 공연자들은 그의 독특한 춤을 흉내 내며, 수많은 헌정 공연자들은 그의 상징적인 춤 동작을 재현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수백만 명에게 마이클 잭슨은 외로운 세상이 자신의 희망과 향수, 어린 시절의 순수함, 구원을 향한 갈망을 쏟아부은 하나의 그릇이었다.
잭슨이 살아 있던 시절, 대중의 반응은 단순한 팬덤을 넘어 집단적 광기의 형태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그를 잠깐 보기만 해도 기절했다. 군중은 그의 호텔 밖에서 며칠씩 야영하며, 마치 희망의 근원 주변에 모인 사람들처럼 그를 향해 팔을 뻗었다.
이에 화답하듯 잭슨 자신의 연출 역시 노골적이고 도발적일 만큼 성서적이었다. 스타디움 콘서트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행사에서 그는 몇 분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긴장감을 고조시킨 뒤,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려 자신의 몸을 완벽한 십자가 형태로 만들곤 했다. 이 십자가 처형의 이미지가 계산된 마케팅이었든, 무의식적인 구조 요청이었든, 관객은 그를 세속적 구세주처럼 대했다.
이 현상은 인간 본성에 관한 근본적인 진실을 드러낸다. 우리는 초월적인 것을 갈망하도록 타고났다.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숭배하느냐이다. 1500년대에 장 칼뱅은 인간의 마음이 끊임없이 모조품을 만들어 내는 영구적인 “우상 공장”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 인류는 돈과 권력, 왕과 여왕, 심지어 자기 자신에 이르기까지 오직 창조주께만 속한 거룩한 자리에 다른 것들을 반복해서 올려놓았다. 우리는 언제나 감탄하고 추종할 다른 대상을 찾아왔다. 더욱 세속화된 문화에서는 유명인들이 과거 종교적 인물들이 차지하던 역할을 대신해 왔다.
그러나 평범한 오락만으로는 이 정도의 집착을 설명할 수 없다. 사람들은 평범한 가수를 놓고 수십 년 동안 논쟁하지 않으며, 그가 죽은 뒤에도 그를 변호하기 위해 대륙을 가로지르는 순례를 하지 않는다. 수백만 명에게 마이클 잭슨은 외로운 세상이 자신의 희망과 향수, 어린 시절의 순수함, 구원을 향한 갈망을 쏟아부은 하나의 그릇이었다. 세상은 그를 확대경으로 들여다보았다. 어떤 이들은 그가 완전히 흠 없는 사람이기를 필사적으로 원했고, 또 어떤 이들은 그가 철저히 유죄이기를 원했다. 그 누구도 그를 실제 모습 그대로, 즉 상처 입고 유한한 한 인간으로 남겨두는 데 만족하지 못했다.
그를 둘러싼 논의가 지금도 폭발적인 이유는 바로 이러한 강렬한 감정적 투사 때문이다. 모든 논쟁은 우리 문화가 품고 있는 갈망을 대신해 벌이는 대리전이다. 그는 오해받은 천재였는가? 명성에 착취당한 피해자였는가? 책임은 얼마나 그 개인에게 있었고, 얼마나 그를 만들어 낸 거대한 산업과 시스템에 있었는가? 여러 해가 지난 지금도 우리가 답을 찾아 헤매는 이유는 인간이 자신을 구원해 줄 인물을 원하며, 때로는 너무 늦을 때까지 그 인물의 결함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한 인간을 우상으로 만드는 행위는 제단 한가운데 서 있는 당사자에게도 파괴적인 대가를 치르게 한다. 성경은 우상이 그것을 만든 자와 우상의 대상이 된 자 모두를 결국 일그러뜨린다고 경고한다. 시편 115편 8절은 이를 분명히 말한다. “우상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마이클》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 가운데 하나는 명성이 잭슨 주위에 점차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대체 현실을 구축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데 있다. 그것은 도덕의 규칙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가짜 에덴동산이었다. 영화는 비할 데 없는 성공을 거둔 젊은 남자가 세상을 자신의 뜻대로 완전히 굽힐 수 있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은 객관적 현실에 자신을 맞추며 평생을 살아가지만, 마이클 잭슨은 현실이 끊임없이 자신에게 맞추어지는 우주 속에서 살았다.
영화는 1980년대 후반, 그가 세계적 슈퍼스타로서 절정에 올랐던 시점에서 이야기를 끝낸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그의 초기 성공을 깊은 불길함 속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네버랜드 목장이 등장하기 전에, 충격적인 다큐멘터리와 소송, 공개 재판이 벌어지기 전에 멈춘다. 그러나 네버랜드의 물리적 대문이 세워지기 전부터 이미 그의 고립을 낳은 심리적 뿌리는 선명하게 드러난다.
잭슨의 명성이 커질수록 그의 세계와 나머지 피조세계 사이의 거리도 커졌다. 인간의 행동을 제한하고 규율하는 일상적인 기대와 한계는 점차 사라지는 듯했다. 침팬지와 코끼리, 라마를 비롯한 온갖 이국적인 동물들, 개인용 놀이기구,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쇼핑에 둘러싸인 채 잭슨은 자신이 직접 설계한 세계에서 살았다. 그가 더 유명해질수록 평범한 인간의 행동 방식에 자신을 맞추는 일은 더욱 불가능해졌다. 어쩌면 주변 사람들이 그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상화의 숨겨진 저주다. 아무도 당신에게 진실을 말해 줄 만큼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곳으로 추방되는 것이다. 끊임없는 찬사는 덫이 된다. 잠언 29장 5절은 이렇게 말한다.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마이클 잭슨은 매일같이 그 그물을 짜는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가 더 유명해질수록 그에게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친구들과 직원들은 그의 왕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 낸 신화의 메아리 속에 갇혔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라.”(전도서 4장 13절) 잭슨은 고대의 어떤 왕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전 세계적인 지배력을 누렸지만, 그의 측근들은 현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장벽이 되었다. 진실이 추방되면 규칙은 휘어지고, 경계는 흐려지며, 마침내는 결과와 책임조차 협상의 대상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결국 그것들은 결코 협상할 수 없는 형태로 돌아온다.
마이클 잭슨은 2009년 급성 프로포폴 중독으로 사망했다. 결국 그는 외로운 침실에서 약물 과다 투여로 생을 마감한 평범한 인간의 육체였다. 지상에서 가장 숭배받던 사람조차 이 연약한 현실을 피할 수 없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잭슨을 우상화한 위험은 우리 자신에게도 직접 이어진다. 사회가 한 인간을 성상으로 만들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진실이다. 사실과 증거는 감정과 충성심보다 부차적인 것이 된다. 사람들은 무엇이 진실인지를 묻는 대신, 자신이 진실이기를 바라는 현실의 버전을 방어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논의는 실제 인간에 관한 대화가 아니라, 거짓 신앙을 독단적으로 수호하는 행위로 변한다.
창세기에서 뱀이 하와에게 건넨 최초의 거짓말은 단순했다.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유혹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스스로의 기준으로 현실을 규정하려는 오만이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지만, 인간을 신으로 삼으면 끔찍한 결과가 빚어진다. 어쩌면 이것이 마이클 잭슨의 이야기가 현대의 관객들에게 조용히 건네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그의 이야기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한 인간을 인간으로 보기를 멈추고 그에게 신성을 기대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담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비추도록 창조되었을 뿐, 그분의 영광의 무게를 짊어지도록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세실리 콕스는 코넬대학교 MBA 과정에 재학 중이며, MBA 학생회의 공동 회장을 맡고 있다. 또한 코넬 존슨 크리스천 펠로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코넬대학교 엔터테인먼트·미디어·스포츠 클럽의 교육 담당 부회장을 맡고 있다. 신앙을 북돋우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스토리텔링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서로를 연결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에 깊은 열정을 가지고 있다.
원문 A Cultural Critique of Michael Jackson and Modern Idola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