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구하라고? Ask Whatever I Wish?

기도를 향한 하나님의 대담한 약속

데이비드 매티스
David Mathis

“우리가 기도할 수 없다면, 우리가 바라보는 하나님이 너무 작은 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날이 밝아올 때마다 하나님의 세상이 지닌 두 가지 거대한 신비가 우리의 코앞을 스쳐 지나간다.
이 두 가지 경이는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려 우리는 자주 그 영광을 놓치곤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평범해 보이지만, 우리는 때때로 걸음을 멈추고 하나님을 향한 신선한 경외감과 우리를 위해 베푸신 그분의 특별한 방편 앞에 설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신비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은 우리와 소통하실 의무가 없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소통하신다. 그분은 말씀하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다. 하늘과 땅을 통해 말씀하시고,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말씀하시며, 결정적으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자신의 아들, 즉 성육신하신 신성한 말씀(Word)을 통해 정점을 이루실 만큼 말씀이 많으신 분이다.

우리가 성경이라 부르는 그 책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를 지으신 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두 번째 거대한 신비는 그러한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신다는 사실이다. 말씀하기를 좋아하시듯 그분은 듣기도 좋아하셔서, 자신이 사랑하는 자녀들을 향해 몸을 굽히고 귀를 기울이신다. 단순히 들을 의향이 있으신 것을 넘어 간절히 듣기를 원하시며, 우리를 실제적인 관계의 주고받음 속으로 초대하신다. 그분은 들으시기 위해 말씀하시고, 우리의 말을 들으시기 위해 귀를 기울이신다. 우리가 기도라 부르는 행위는 그 단순함과 평범함 속에서도, 깊은 신비와 현실 세계에 미치는 실질적인 효과 면에서 도저히 다 측량할 수 없는 경이로움 자체다.

기도에 대해 풀리지 않는 의문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차고 넘치도록 분명히 보여주신다. 그분은 우리의 기도를 겨우 참아내시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신다. 기도를 초대하시고, 손짓하시며, 구애하신다. 기도를 요청하시고 기도하라고 일깨우시며, 우리의 기도를 이끌어내기 위해 그분의 주권적인 각도를 움직이신다. 그분은 자신의 백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신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보여주는 가장 위대한 표현 중 하나가 바로 그분의 아들의 입술을 통해 선포된 수많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는 구절들이다.

무엇이든 구하라, 정말로?

마태, 마가, 누가는 기도를 향한 예수님의 파격적일 만큼 압도적인 호소를 각각 다음과 같이 포착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태복음 21:22)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 11:24)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누가복음 11:9)

이 아낌없는 초대에는 신성한 진정성이 울려 퍼진다. 어떤 인간이 감히 이런 말을 지어내어 예수님의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오직 예수님만이,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이를 생각하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호소는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날 밤, 다락방에서 나누신 요한복음에서 특히 짙게 나타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한복음 14:13–14)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7)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한복음 15: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한복음 16:23–24)

그렇다, 이 포괄적인 제안들은 수많은 의문을 자아낸다. 하지만 우리가 문맥과 조건들을 따지며 이 구절들을 제한하려 들기 전에, 그 모든 말씀 이면에 흐르는 하나님의 고결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놓치지 말자. 하나님은 당신이 기도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목소리를 마지못해 견디시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기도로 그분께 말하는 것은 그분의 생각이며, 그분의 설계이자, 그분의 갈망이다. 오, 그분이 얼마나 당신의 기도를 원하시는지!

기도를 향한 신선한 산소 공급

어떤 신학자들은 이 제안에 너무나 많은 조건을 달아놓은 나머지, 결과적으로 우리가 이전보다 덜 기도하게 만들고 소망을 품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비극적인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께서 왜 이토록 거침없는 약속을 하셨는지 그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그분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결코 당신의 기도를 가로막으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안에 남아 있는 기도의 불씨에 신선한 산소를 불어넣으시려는 것이다.

예수께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고 거듭 말씀하시는 이유는 진심으로 당신이 기도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이 초대를 해석하는 여러 정직한 방법들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우리가 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도록 돕는 하나의 주된 기치와, 대담함을 불어넣어 주는 하나의 든든한 버팀목에 집중해 보자.

기치: 아들의 이름 안에서

예수께서 요한복음 14~16장에서 더하신 핵심 나침반은 바로 자신의 이름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요한복음 14:13; 15:16; 16:23).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요한복음 14:14).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라는 단어를 마법의 주문이나 일종의 주술처럼 덧붙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D.A. 카슨은 저서 《요한복음》에서 “그분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는 그분의 이름이 나타내는 모든 것과 철저히 일치하여 드리는 기도”라고 서술했다. 그분의 이름은 그분의 전 인격과 사역을 대변하며, 기도하는 사람 안에서 그분의 모든 것을 올바르게 받아들이고 누리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참된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계시를 오늘날의 시선으로 온전히 아는 자로서 기도함을 의미한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과 달리 우리는 하나님 자신이 아들의 인격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거하셨고, 우리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당하셨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만물을 통치하려 부활하셨음을 알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공식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그분을 역사의 정점이자 영웅으로 알고, 그분을 나의 구속주이자 완벽한 의로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높이시기 위해 세상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며 죄인을 화해시키셨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그분의 위엄에 깨어 있고, 그분의 영광을 갈망하며, 그분의 영광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더욱 확장되기를 고대하는 것이다.

이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기도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관계성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7절에서 ‘무엇이든지 구하라’는 말씀의 전제 조건으로, 응답받는 기도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나누신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 안에 거할(머무를) 수 있는가? 여기서 그분은 자신의 ‘말씀’을 가리키신다. 우리가 말씀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을 드러내는가? 그분 자신의 마음과 뜻, 그리고 아버지의 마음과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을 자신의 마음과 정신에 새겨둔 사람은 “그가 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기 때문에 기도에 강력한 효력을 발휘한다.”

여전히 신비는 남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내 영혼에 새겨두는 것이 내 내면을 먹이고 따뜻하게 하며 형성할 뿐만 아니라, 나를 기도에 훨씬 더 효과적인 사람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깊은 깨달음과 영감을 준다. 나의 영혼 자체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바로 그것들을 구하도록 빚어지기 때문이다.

버팀목: 성령에 의하여

여기에 더할 또 하나의 보배로운 ‘버팀목’이 있으니,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다. 새 언약의 거대한 신비 중 하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 안에 거하도록 자신의 성령을 주신다는 사실이다. 그분의 영은 우리와 함께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다(요한복음 14:17; 7:38–39 참고). 그리고 우리 안의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자극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조차 우리의 기도가 효력을 발휘하도록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로마서 8:26–27)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이 당신 안에서 일하고 계시며, 당신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고, 당신의 궁극적인 유익과 기쁨의 충만을 위해 당신의 기도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빚어가고 계심을 확신하며 기도하라.

구하도록 해방되다

당신 안에 계신 성령은 하늘 아버지가 당신의 기도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시는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표현이다. 그분은 당신이 그분께 말하기를 주저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이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아버지는 자신의 양들이 구하는 일에 있어서 소심해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분은 자신이 관대하신 분임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시며, 우리의 거룩한 소망을 이루어주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자신을 가장 갈망함으로써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우리도 원하는 정직한 자녀들로 우리를 빚어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이라는 양식을 먹고 살며, 그분의 말씀을 통해 그분의 뜻을 영혼에 새긴 우리가, 이제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보며 사랑받는 자녀의 대담함으로 그분께 다시 말하기를 원하신다. 거룩한 마음은 구하고, 구하고, 또 구하도록 해방된다. 비록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라도,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성령님이 계심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매티스(David Mathis)는 디자이어링 갓(Desiring God)의 편집장이자 시티즈 교회(Cities Church)의 목사다. 한 아내의 남편이자 네 자녀의 아버지이며, 저서로는 《운동에 관한 작은 신학: 몸과 영혼으로 그리스도를 누리기》(A Little Theology of Exercise: Enjoying Christ in Body and Soul, 2025)가 있다.

원문 Unleashed to A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