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찰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

효율이 형성을 대신할 수 없다

개신교 매체 크리스천 팝앤컬처에 실린 글 하나가 짧지만 날카로운 문장을 남겼다. 마찰을 충분히 제거하면 더 효율적인 형성 과정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형성 과정 자체가 사라지고 콘텐츠 전달만 남는다는 지적이다.

영성 형성이 늘 더딘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성경을 붙들고 씨름하는 시간, 기도 중에 말이 막히는 순간, 공동체 안에서 부딪히며 깎이는 과정이 모두 마찰이다. 그 마찰이 사람을 바꾼다. 요약과 자동 완성이 그 자리를 메우면 결과물은 더 매끄러워지지만 사람은 그대로 남는다. 설교문은 완성되고 묵상 노트는 채워지는데 정작 그것을 쓴 사람 안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떠올려 보면 된다.

숨기고 싶은 사용이라면

개신교 매체 나인마크스에는 목회자가 교회 성도들에게 인공지능 사용을 권면하는 글이 올랐다. 기준은 단순하다. 인공지능을 쓰는 방식이 자랑스러울 만한 것이어야 하고, 세상이 봐도 기쁠 만한 것이어야 한다. 숨기고 싶은 사용이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금지 목록보다 이 기준이 실제로 더 강하다. 목회 현장에서 인공지능을 쓰는 경우를 하나하나 규정으로 나누기는 어렵다. 그러나 교인들 앞에서 밝힐 수 있는지를 물으면 답은 대개 금방 나온다. 감추려는 마음이 생기는 지점이 곧 선을 넘은 지점이다.

아직 이름이 없는 경험들

크리스천 팝앤컬처의 또 다른 글은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가 그 영향을 설명하고 논의하는 능력을 앞질러 간다고 말한다. 겪었지만 부를 이름이 없는 경험이 쌓이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교회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인공지능으로 설교를 준비하고 심방 편지를 다듬는 일이 이미 벌어지고 있는데, 이것을 무엇이라 부르고 어디까지 허용할지에 대한 공통 언어가 없다. 그래서 각자 조용히 쓰고 조용히 불편해한다. 당회와 목회자 모임에서 먼저 할 일은 규정 제정이 아니라 언어 만들기다. 무엇을 도구로 보고 무엇을 대리로 보는지, 어디서부터 성도를 속이는 것이 되는지 함께 말로 정리해야 판단이 가능해진다.

영성 형성에는 지름길이 없다. 목회자가 그 더딤을 견디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교인들에게 무엇을 권면해도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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